은하철도 999 애장판 독서 후기, AI 시대의 질문
- My Experience/책 나라
- 2026. 7. 23.

은하철도 999 애장판(전 10권, 미우)을 도서관에서 빌려 일주일 동안 정독했습니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만화인데, AI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질문들이 보이더라구요.
이번이 세 번째 완독입니다. 그 기록을 후기로 남깁니다.
안녕하세요. 최원진입니다. 본문에는 줄거리와 결말(메텔의 정체 포함)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니, 처음 읽으실 계획이 있는 분은 참고해 주세요.

어린 시절의 999, 애장판과의 재회
어릴 때 TV에서 은하철도 999 애니메이션을 자주 봤습니다. 그때는 그냥 재밌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쯤으로 여기고 있었구요.
그러다 2021년, 미우에서 원작 만화 애장판 전 10권이 나왔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게 아이들을 위한 만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성인을 위한 만화더라구요. 철학적인 질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질문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뒤로는 1~2년에 한 번씩, 여유가 생길 때 도서관에서 빌려 다시 읽습니다. 저에게는 힐링이자 생각을 넓히는 시간입니다.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열 권 합쳐 3,676쪽이나 되는 양장본을 둘 자리가 집에 마땅치 않아서, 당분간은 도서관 대출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두 번은 거의 하루 이틀 만에 몰아 읽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에 걸쳐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AI와 로봇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이라 그런지, 곱씹게 되는 대목이 예전보다 많았거든요.

기계 몸을 향한 여행 - 줄거리
줄거리의 뼈대는 단순합니다. 기계 몸을 공짜로 준다는 안드로메다의 별을 향해, 소년 호시노 테츠로(우리에게는 '철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요)가 수수께끼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초특급 999호에 오릅니다. 원작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일본에서 연재된 이른바 안드로메다편으로, 애장판 10권 '종착역'에서 1부가 완결됩니다.

999호는 정거장마다 다른 별에 멈추고, 철이는 그 별에서 다양한 인간과 기계인간을 만납니다. 한 편 한 편은 짧은 여행기지만, 어느 별에서든 비슷한 질문이 변주됩니다.

영원히 사는 기계 몸은 정말 행복인가. 작품 곳곳의 내레이션은 기계 몸의 영생이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에서 인상 깊게 봤던 에피소드들도, 지금 원작으로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과 생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결말 - 기계화 모성의 실체와 메텔의 선택
여행의 종착지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이렇습니다. 기계 몸의 낙원이라던 기계화 모성 '대 안드로메다'는 실은 인간을 부품으로 쓰는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메텔의 임무는 철이를 그 별의 부품, 그러니까 나사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메텔은 임무 대신 철이를 선택합니다. 기계화 모성은 무너지고,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작품은 이 별이 어쩌면 우주라는 거울에 비친 지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다시 읽으니 보이는 것, '관계'
예전에 읽을 때는 기계 몸과 영생이라는 소재가 먼저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품 속 다양한 '관계'에 자꾸 눈이 가더라구요.
첫째는 철이와 메텔입니다.
알고 보면 메텔은 철이를 부품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띠고 동행하지만, 철이는 그런 메텔을 조건 없이 믿습니다. 물론 철이도 사람인지라 메텔이 환상이 아닐까, 이 여행은 사실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닐까 의심하는 장면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그 믿음은 여행 끝까지 이어지고, 메텔은 철이의 인간성과 용기에 감동해 끝내 철이를 선택합니다.

둘째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철이의 용기와 꿈에 공감하고 감명받아,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길을 열어주는 이들이 여럿 나옵니다. 다시 읽으면서 그런 관계들이 새삼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AI와 로봇이 지금보다 훨씬 발달하면, 우리는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요. 이 만화 속 관계 같은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천사가 아니라 인간, 메텔
메텔에 대한 인상도 달라졌습니다. 어렸을 때 메텔은 그저 예쁘고 천사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메텔은 양면이 있는 '인간'으로 보입니다. 철이를 부품으로 데려가야 하는 임무와, 그의 인간성에 마음이 움직이는 감정을 함께 지닌 존재. 그 사이에서 끝내 한쪽을 선택하는 모습까지 포함해서요. 어릴 때는 보이지 않던 얼굴입니다.

작가의 부고, 그리고 얼티밋 저니
원작 이후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철이가 다시 999를 타는 세 번째 여행, '은하철도 999 어나더 스토리: 얼티밋 저니'입니다. 그림은 시마자키 유즈루, 원작·설정·감수는 마츠모토 레이지가 맡아 2018년부터 일본 월간 챔피언RED에 연재됐고, 한국에는 2020년부터 1~6권이 출간됐습니다.
저도 한국판을 재밌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온라인 기사로 마츠모토 레이지 작가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2023년 2월이었습니다. 좋아하던 작품의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무척 아쉽더라구요.
얼티밋 저니 연재에도 곡절이 있었습니다. 작화가의 건강 문제로 2022년 9월 연재가 중단됐고, 그 사이 마츠모토 작가가 별세했으며, 2024년 12월에야 연재가 재개되어 2025년 4월 일본에서 전 9권, 총 113화로 완결됐습니다. 작가는 떠났지만 그가 감수하던 이야기는 끝을 맺은 셈입니다. 다만 한국판은 아직 6권까지만 나와 있어서, 저는 7~9권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참고로 마츠모토 본인이 1996년부터 그리던 2부 '이터널편'은 작가의 별세로 이야기가 미완으로 남았고, 연재분을 모은 애장판이 한국에도 나와 올해 1월 전 5권으로 완간됐습니다.
수십 년 뒤에 도착한 질문
애장판 10권의 마지막 장면, 홀로 남은 철이의 모습에는 이런 문장이 붙습니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결국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기계 몸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그 삶에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영생을 준다는 별을 향해 달리던 기차가 끝내 도착한 곳은, 그 물음 앞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냥 재밌게 보던 만화가 수십 년이 지나 AI 시대의 문턱에 선 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1~2년 뒤 네 번째로 읽을 때는 또 무엇이 보일지 궁금하네요.
이상, 은하철도 999 애장판 독서 후기였습니다.